- 공지사항이 없습니다.
원망을 감사로 바꾸라
2017.7.2. 주일예배(맥추감사주일). 김충현
민 14:26-38, 골 3:15-17 <원망을 감사로 바꾸라>
12세기부터 13세기까지,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대륙을 정복한 몽골 제국을 세운 지도자, 징기스 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내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만 10만, 백성은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백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순간 나는 징기즈칸이 되었다.>
여기서 징기스칸이 말한,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정적인 생각 혹은 원망이 아닐까... 집안 원망, 가난 원망, 나라 원망, 무학력/무스펙 원망, 무능력 원망, 현실 원망... 내 안에 이런 원망들이 있는 한, 나는 그 어떤 일을 해도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남을 향해서 늘 원망하는 사람들 또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앤드류 매튜스는 말하기를, <다른 사람을 탓하고 원망하는 사람은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고 했습니다.
고치기 힘든 병 중 하나가 원망병인데, 원망병에 걸려서 결국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스로 불행을 자초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누군가 하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지난 몇 주간, 새벽기도하면서 민수기 묵상을 계속 하는데, 묵상하면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출애굽할 때부터 홍해를 넘어서 40년 광야생활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에서는 원망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때론 악한 말로 원망하고, 때론 고기 없다고 원망하고, 때론 모세 원망하고, 때론 출애굽 원망하고, 때론 모세와 아론 지도력 원망하고, 물없다고 원망하고, 때론 에돔 땅 우회했다고 원망하고... 무슨 조금만 위기가 닥쳐도, 조금이라도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입에서 원망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출애굽 이후, 광야 40년의 역사는 원망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이렇게 원망했으니, 잘 될 리가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원망의 한 케이스인데, 모세가 가나안 땅 정탐을 위해서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을 때, 후에 부정적인 보고를 한 정탐꾼들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했을 때의 일입니다. 가나안 땅 정복이 불가하겠다는 정탐꾼들의 보고를 듣고는, 백성들이 밤새도록 통곡하면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원망하는 백성들을 향해서 큰 벌을 내리셨는데, 그 벌은 광야에서 죽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사기를, 원망하는 말을 다 들으셨다고 했습니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런데 들은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다 죽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29-30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광야에서 죽으면, 당연히 가나안 땅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고 출애굽한 것인데... 광야길 고생고생하면서 걸어왔는데... 하나님은 원망한 출애굽 세대는 광야에서 죽게 하고, 유아들, 곧 다음 세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32절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하나님을 원망한 죄로 인해서, 다음 세대는 원망한 출애굽 세대가 다 죽기까지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33절).
하나님은 거듭 원망한 백성들을 <나를 거역하는 악한 회중>이라고 하시면서, 광야에서 소멸되어 죽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35절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반드시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원망한 회중들만이 아닙니다. 회중으로 하여금 원망하게 만들었던 10명의 정탐꾼들! 같은 말을 해도 꼭 부정적으로만 말했던 사람들, 가나안 땅에 악평한 사람들 역시 광야에서 죽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재앙으로 죽게 되었습니다(37절). 출애굽 세대 중에서 살게 된 사람은 오직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 다른 사람들은 다 원망하는데, 끝까지 원망하지 않은, 두 사람은 생존하게 되었습니다.
소멸과 생존, 재앙과 복... 두 가지 길로 갈라놓은 것은 오직 한 가지, 원망이었습니다. 같은 길을 가면서도 원망하는 사람과 원망하지 않은 사람... 그 결과가 이렇게도 다릅니다. 여러분은 소멸을 원하십니까 생존을 원하십니까? 재앙을 원하십니까 복을 원하십니까?... 생존을 원한다면, 복을 원한다면, 이 시간 이후로 원망을 감사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으로부터 원망이 솟아날 때, 그 원망을 감사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진실로 생존할 수 있습니다.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원망을 감사로 바꿀 수 있을까요? 우선 이것부터 생각해봅시다. 원망을 감사로 바꿀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예수를 진실로 믿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인이라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서 왕으로 다스리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내 안에서 원망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결코 나올 수 없습니다. 때론 육체를 따라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런 저런 일로 인해서 원망이 나오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진실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원망을 감사로 바꿀 수 있습니다.
원망을 감사로 바꾸는 방법... 오늘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입을 열 때 감사하는 말을 하는 것을 습관화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부정의 언어를 긍정의 언어로 바꾸어서 말하는 것을 습관화해야 합니다.
입을 열 때마다 원망하는 것이 습관화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입만 열면, 아무개 원망, 아무개 원망... 입만 열면, 나라 원망, 교회 원망... 입만 열면, 하늘 원망... 원망이 습관화된 사람은 자신이 그러는 줄 모릅니다. 또한 자신이 원망하는 말로 인해서 상대방이 어떤 상처나 피해를 받는지도 의식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 공동체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생각없이 원망하는 말을 쏟아놓습니다. 원망이 습관화된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마다, 이런 생각을 자동으로 하게 됩니다. <오늘은 또 무슨 원망을 할까?>, <이번에는 또 무슨 원망을 할까?>...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그래서 이제는 미운 마음을 넘어서서, 너무나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생 원망만 하다가 세상 마감할테니,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으니...
이렇게 불쌍한 인생으로 마감하지 않으려면, 범사에 내가 아무 생각없이 내뱉은 말들 중에 원망한 말들이 있거든, 그 말들을 감사하는 말로 바꾸어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원망할 수 있는 말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들을 감사하는 말로 바꾸어 말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지난 몇 주간, 가뭄이 계속 될 때가 있었습니다. 농지, 땅 바닥이 갈라져서 농심이 타들어가고, 저주지 바닥이 드러나보이고, 강도 시내도 점점 수량이 줄어들고, 산들마다 메말라서 화재도 자주 일어나고... 나라 전체가 물 비상이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가끔 비 소식이 있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TV 방송에서 뉴스앵커나 기상캐스터들이 이런 말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오늘 비 예보는 있지만, 해갈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자막에도 크게 뜹니다. <해갈에는 턱없이 부족>... 국민들은 다 압니다. 그런 정도의 비로는 해갈이 안된다는 것, 객관적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다 압니다. 그런데 자꾸만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니까, 그걸 듣는 사람들은 더 힘들어합니다. 그러면서 방송에서 들은 말을 일상생활에서 반복합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비가 와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해. 큰 일이야. 큰 일이야.>... 물론 아무 생각없이 듣는 사람들도 있고, 방송을 아예 안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방송에서야 그만큼 가뭄이 심각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런 표현을 계속 사용하는 것이겠지만, 굳이 그런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한다고 해서 가뭄 사정이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애타는 국민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공감하기를 원한다면, 이렇게 표현해보면 어떨까요? <오늘 비 예보는 있지만, 조금만 내릴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내려서 감사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내리기를 하늘에 기대해봅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냐 하면, 여러분, 비는 누가 줍니까? 하늘에서 줍니다. 성경대로라면, 비는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겁니다. 마 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해를 비춰주시는 분도 하나님, 비를 내려주시는 분도 하나님... 이렇게 비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인데,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면, 우리 하나님이 비를 내려주시는데 아주 인색하신 분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턱없이 부족하게 비를 내려주시는 하나님... 우리 하나님이 그런 하나님은 아니잖습니까? 만약 비 안내려주신다고 원망만 계속 쏟아놓는다면, 우리 하나님을 <턱없이 부족한 하나님>을 전락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일상에서 우리의 언어습관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더 더욱 그래야 합니다. 말 한 마디, 말 한 마디... 부정의 언어를 긍정의 언어로 바꾸어서 말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 골 3장에서 바울은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권면했습니다. 15절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감사하는 자... 곧 감사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되라고 했습니다. 16절에서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특히 17절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무엇을 하든지 라고 하면서, 말에나 일에나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말에나... 무엇을 하든지 감사하는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때론 원망할만한 상황이 발생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말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이 그 말로 인해서 하나님이 감사를 받으시고, 그 감사에 합당한 복을 주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트렌취(Trench) 감독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은혜를 감사하고 나면, 우리에게 중얼거리거나 원망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만 구렁텅이만 있어도 벌써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험하고 캄캄한 길에 조그마한 빛만 비추어도 하나님이 주시는 자비로운 빛이라 하여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생이란 왜 이리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느냐고 얼굴을 찡그려 불평하는 사람이 있으며, 게딱지 같은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늘 아버지와 한 없는 은혜와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
지금 과연 나는,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까?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맥추절(칠칠절)은 구약,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에 하나로, 보리를 추수할 때, 첫 수확의 열매를 거두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맥추절과 관련해서 우리가 특히 기억해야할 것은, 첫 수확의 열매를 감사하는 것입니다. 단지 첫 수확의 열매에 대해서만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첫 수확의 열매에 대한 감사를 시작으로 해서, 이후로도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삶의 영역에서 거두게 하시는 것에 대해서 계속해서 감사한다는 뜻도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 수확의 열매를 드린다는 것은 감사의 시작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거두게 하시는 모든 은혜에 대해서 잊지 마시고, 먼저 첫 수확의 열매를 거두게 하신 것에 대해서 진정으로 감사하셔서 감사한만큼 은혜와 복을 더하시는 역사가 계속 되기를 바랍니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조회 | 날짜 |
---|---|---|---|---|
803 | [2020 여름 시편묵상1] 하나님이 찾으시는 이상형 | 샬롬김 | 2204 | 2020.07.12 12:05 |
802 | 행복으로 직행하는 지름길 [1+1] | 샬롬김 | 2135 | 2020.07.05 12:15 |
801 | 한반도 주권은 하나님 손에 | 샬롬김 | 2582 | 2020.06.28 12:13 |
800 | 9회말 2out인생이어도 | 샬롬김 | 1880 | 2020.06.21 12:28 |
799 | 교회 다니십니까? | 샬롬김 | 1567 | 2020.06.14 12:06 |
798 | 코로나 블루 백신 corona blue vaccine | 샬롬김 | 1983 | 2020.06.07 12:09 |
797 | 포스트코로나(Post COVID-19)시대와 전도 | 샬롬김 | 2295 | 2020.05.31 12:12 |
796 | [예.살.3] 온유한가 | 샬롬김 | 1682 | 2020.05.24 19:56 |
795 | 5월 17일 최정민 목사 설교 | 샬롬김 | 2107 | 2020.05.22 12:40 |
794 | 선을 지키는 청년 | 샬롬김 | 1495 | 2020.05.17 09:15 |
793 | 부모사랑은 무조건! | 샬롬김 | 1572 | 2020.05.11 04:16 |
792 | 에덴하우스입니까 | 샬롬김 | 1878 | 2020.05.03 12:15 |
791 | 죄와의 영적 거리두기 | 샬롬김 | 1657 | 2020.04.27 04:13 |
790 | 위기시대의 최후승리자 | 샬롬김 | 1459 | 2020.04.19 05:33 |
789 | 예수 부활의 이유 | 샬롬김 | 1752 | 2020.04.12 06:05 |
788 | 기도 중인가? 잠자는 중인가? | 샬롬김 | 1667 | 2020.04.05 05:25 |
787 | 한국교회는 대한민국의 희망인가 | 샬롬김 | 1671 | 2020.03.29 05:49 |
786 | 종말론적 교회와 신앙 | 샬롬김 | 1537 | 2020.03.22 05:17 |
785 | [예.살. 2] 애통하며 함께 우는가 [2] | 샬롬김 | 1974 | 2020.03.15 05:39 |
784 | 어려울 때의 친구 | 샬롬김 | 1900 | 2020.03.08 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