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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강해 34]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
2024.5.1. 수요성서강해: 마가복음강해(34). 김충현 목사
막 10:1-12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
지난 번 말씀은 [누가 영생에? 누가 지옥에?] 였다.
예수님이 두루 다니시면서 가르치실 때의 일이다. 이번에는 유대 지경과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가셨을 때의 일인데,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 무리가 다시 몰려 들었고, 그러자 예수님은 말씀 전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셨는지, 다시 전례대로 가르셨다.
그러던 중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이런 질문을 했다(2절).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이혼의 정당성을 묻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진정 모르기 때문에 알기 위해서 하는 질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에 빠뜨리기 위한 질문이다. 평소에 예수님이 율법이나 자신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다른 가르침을 하는 것처럼 보이까,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이 자기들의 가르침보다도 더 탁월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니까,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거나 곤란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일종의 시기심이나 경쟁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은가? 당연히 옳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이전에 예수님이 가르치셨던 것을 가지고 논쟁의 주제로 삼기 위해서였다. 산상수훈, 마 5장에 보면, 예수님이 간음을 주제로 해서 가르치신 내용이 있다. 마 5:27-32에 보면, 예수님은 십계명 7계명 <간음하지 말라>는 명령을 한층 더 강조하는 뜻에서,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했다고 하면서, 내적 순결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마 5:31-32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예수님의 가르침대로라면, 음행한 이유가 있으면 아내를 버려도 된다는 것인가?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 아내를 버리기 위해서, 일부러 음행한 사실처럼 조작해서 사실로 주장하면 아내를 버릴 수도 있게 된다. 산상수훈에서의 예수님의 가르침이 이혼의 정당성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혼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말씀의 의도는 거기에 있지 않았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시험 의도를 간파하시고는, 근본적인 문제에서부터 해답을 찾고자 먼저 모세의 교훈을 가지고 말씀하셨다. 3절에 증거된 것처럼,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모세는,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지도자요 바리새인들은 그 누구보다도 모세의 율법에 철저한 사람들이니, 예수님은 모세의 교훈으로 깨달음을 주시기를 원하셨다.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서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4절).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이 대답은 신 24:1-4에 근거한다.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 그 여자는 그의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니와 / 그의 둘째 남편도 그를 미워하여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냈거나 또는 그를 아내로 맞이한 둘째 남편이 죽었다 하자 / 그 여자는 이미 몸을 더럽혔은즉 그를 내보낸 전남편이 그를 다시 아내로 맞이하지 말지니 이 일은 여호와 앞에 가증한 것이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범죄하게 하지 말지니라>
여기서 모세가 이혼 증서를 써주라는 한 것은, 단순히 이혼의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수치스런 일과 관련해서 약자의 권익이 박탈을 당하거나 억울하게 피해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혼 증서를 써주라고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혹은 일방적으로 이혼하려고 한다든지, 여자에 대해서 이혼 증서를 남발해서는 안된다. 이 사실과 관련해서 예수님도 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이렇게 이혼 문제가 거론되었으니, 그와 관련해서 예수님은 결혼의 참 의미에 대해서 첨부해서 가르치셨다. 결혼의 기원을 창세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창조 사건에 두셨는데(창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하나님이 성별대로 창조하시고 한 몸 되게 하신 것이 결혼이라고 하셨다. 6-9절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하나님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각각의 성별을 정하셨다는 뜻이다. 성별은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다(사람이 자기 원하는대로 성을 바꿀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 성별에 따라서 살되, 때가 되면 그 부모를 떠나서 사랑하는 대상과 한 몸이 되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한 몸을 강조하면서, 한 몸의 중요성을 이렇게 표현하셨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표준새번역개정판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된다>... 여기서 짝지우다(join together)라는 단어는, 헬라어 <쉬네쥬크센>인데, 함께 멍에를 메다라는 뜻이 있다. 그러므로 한 몸이 된 부부는 괴로우나 즐거우나 함께 멍에를 메는 관계, 곧 협력하는 동반자 관계라는 의미가 있다. 이렇게 한 몸을 강조하시는 것을 보면, 예수님은 결코 이혼의 정당성에 대해서 말씀하신 적이 없음을 증거한다.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에 대해서 제자들은 확신이 없었는지, 이혼에 대해서 다시 질문한 적으로 보이는데, 예수님은 다만 부부 간의 정절을 지킬 것을 강조하셨다. 11-12절 <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 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 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 남편도 간음해서는 안되고 아내도 간음해서는 안된다는 것인데, 이는 부부가 서로 이혼의 빌미가 될만한 죄(간음죄 등)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몸됨을 끝까지 지켜나가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이혼의 부당성을 강조하셨다.
이혼의 문제는 예수님 시대에도 있었지만, 오늘날에도 있다. 요즘은 훨씬 더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서 부부가 갈라서게 되고, 끝내 이혼하게 된다. 성격 차이가 문제가 되기도 하고, 경제적인 것도 문제가 되고, 가치관이 다른 것도 문제가 되고, 시부모와 갈등도 문제가 되고, 자녀와 관련된 것이 문제가 되고, 이런 저런 안좋은 일로 신뢰가 깨진 것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부부 두 사람 간에 원만한 합의가 안되면 변호사를 선임해서 대처하기도 한다. 강남구, 서초구에 보면 이혼 전문 변호사 사무실들이 많다. 그만큼 이혼하는 부부가 많다는 것이다. 황혼이혼하는 부부도 늘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법률적으로 완전히 남남이 되는 이혼도 있지만, 그와는 별개로 수면이혼이라는 것도 있다. 한 지붕 아래 살면서 잠자는 방만 각각 따로 따로 쓰는 것...
부부생활을 하다보면, 때론 위기가 닥칠 때가 있다. 피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생활양식이 다른 남남이 부부가 되었는데, 어찌 마찰이나 충돌이 없겠는가? 완전한 성자가 아닌 이상 부부생활은 늘 잔잔하고 평화로울 수만은 없다. 때론 서로 대립하고 싸우게 될 때도 있는데,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 이혼까지 생각하게 된다. <이참에 서로 헤어지면 좋겠다> 그렇지만 이혼하기 전에 반드시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경우라면 한번 더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를 부부되게 하신 분이 누구인지, 우리가 누구 때문에 결혼하게 되었는지...
결혼의 기원은 창조 때로 올라가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서로 짝지워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질서 중 하나로서, 모든 창조질서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결혼이다. 하나님이 친히 짝지워주셨으니, 사람이 나눌 수 없다. 곧 임의로, 자기 마음대로 이혼해서는 안된다. 부부 간에 괴롭고 힘든 일이 있어도, 억울하고 속상한 일이 있어도 함께 멍에를 매면서 서로 협력하는 동반자 관계를 맺어야 한다. 물론 불가피하게 이혼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상대방이 죽이려고 한다든지,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피해를 계속 주어서 도저히 함께 살 수 없게 한다든지... 그렇지만 모든 부부 관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속한 것이라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하고, 그 질서대로 살기를 힘써야 한다.
오늘 말씀의 제목을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으로 정했는데,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 곧 하나님의 창조질서로서의 결혼을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유지할 수 있는지, 이 시간 함께 생각해보자. 우리 교회에는 [예닮골부부십계명]도 있지만, 하나님의 짝꿍과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을 몇 가지 생각해보고 실천해보자. 제가 7가지만 열거할테니, 그 다음은 여러분 나름대로 창조적으로 만들어보시기 바란다.
1. 우리 부부의 결혼식 주례자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항상 잊지 않는다.
모든 결혼식에는 주례자가 있다. 요즘은 주례자없는 결혼식도 많이 하지만... 여러분 결혼식 때 주례자가 누구였는지 기억나는가? 저 같은 경우는 저의 부친 목사님... 그리스도인의 결혼식 경우, 결혼식의 진정한 주례자는 하나님이시다.
2. 하나님이 왜 저 아무개를 나의 짝꿍이 되게 하셨을까를 생각하면서, 그 목적이 이끄는 삶을 영위한다.
과거에, 현재에 저 아무개를 나의 짝꿍이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이다. 그러므로 때론 저 아무개가 내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낙담하거나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저 아무개는 영화배우나 드라마 탤런트보다 더 멋지고 귀중한 파트너이다. 최근 [눈물의 여왕] 주인공들, 김수현, 김지원보다...
3. 하나님이 정해주신 짝꿍이니, 마땅히 존경과 섬김으로 대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로 상대방을 존경해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로 상대방을 섬겨야 한다. 상대방이 나를 그렇게 대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렇게 대해야 한다. 인간관계에 가장 존경해야할 대상은 지금 현재 나와 같이 살아주는 남편, 아내이다.
4. 하나님의 짝꿍으로서, 하나님이 알려주신 방식대로 서로 사랑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그 사랑을 알고 있다. 아가페의 사랑, 십자가의 사랑... 나도 내 남편을, 내 아내를 그렇게 사랑해야 한다. 인간적인 사랑을 넘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해야만이 끝까지 사랑할 수 있다.
5. 하나님의 짝꿍답게 경건한 품위, 친절한 미소, 자상한 매너, 적절한 유머를 가진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작은 천국과 같다. 그러므로 부부 간에 서로를 대할 때 천국의 신사숙녀답게 대해야 한다. 경건한 품위, 친절한 미소, 자상한 매너, 적절한 유머를 항상 휴대해야 한다. 화내거나 짜증내거나 막말하면 안된다.
6. 이런 상황에서는 하나님의 짝꿍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상황에 맞게 지혜롭고 슬기롭게 말하고 행동한다.
부부 간에 여러 가지 예기치 않는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데, 그때 그때 맞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로운 말, 슬기로운 행동... 그러므로 삶의 순간 순간, 하나님께 그 지혜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 이런 상황에서는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7. 죽음이 둘 사이를 갈라놓을 때까지, 하나님의 짝꿍으로서의 신뢰와 의리를 끝까지 지킨다.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날 수도 있고,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 하나님이 누구를 먼저 불러가실지 모르지만, 그때까지는 하나님의 짝꿍으로서의 신뢰를 지켜야 한다. 의리를 지켜야 한다. 당신만을 사랑하겠다는 의리!!
...
[집중 묵상 구절]
막 10:9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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