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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지키는 청년
2020.5.17. 주일예배(청년주일). 김충현 목사
시 119:9-16, 단 3:8-18 [선을 지키는 청년]
인생은 누구에게나 단 1번만 주어집니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우리에게 한번만 주어지는 인생... 여러분은 그 인생이 지금 행복하십니까 아니면 불행하십니까... 어떤 때는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인생을 2번 살 수 있다면?... 그러면 첫 번째 인생은 간혹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해서 불행해질 때가 있지만, 두 번째 인생은 그런거 없이 완벽하게 행복할 수 있을까요?... 꼭 그렇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인생은 본래 1번만 주어지는 것인데, 만약, 그럴리는 전혀 없지만, 그래도 만약 인생이 2번도 주어지고, 3번도 주어진다고 할지라도 그 인생은 또 다시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단 1번만 주어지는 인생... 진실로 행복한 인생이 되고 싶으시지요?... 그렇다면 반드시 잘해야 하는 것, 철저히 해야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선을 지키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선은 한자로 착할 선, 그 선이라고해도 되겠지만, 여기서는 그 선이 아니라, 어떤 대상, 상황에 있어서 그어놓은 금이나 줄, 조절하거나 제한된 line을 뜻합니다. 모든 일, 모든 관계에는 지켜야할 선이 있는데, 물론 선을 지킨다고 해서 언제나 행복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바르게 선을 지킨 사람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기본적으로 누려야할 행복을 빼앗기지 않게 됩니다.
지난 과거에도 그렇고, 오늘날에도 변치않고 반복되는 현상... 많은 사람들이 지켜야할 선을 지키지 않아서 불행의 늪에 빠지고 맙니다.
여러분은 운전하실 때, 차선을 잘 지키시지요?... 깜빡이도 안켜고 1, 2, 3차선을 왔다갔다 하시지는 않으셨지요?... 음주운전하게 되면 시야가 혼미해지면 차선을 제대로 지킬 수 없지요?... 오늘, 교회 오실 때, 인도로 걸어야 하는데, 차도로 걸어오신 분은 없으시지요?...
이번에 코로나19시국이 진정되는 듯 하다가, 지난 주간, 이태원 클럽들에서 확진자들이 생기면서 또 다시 재확산이 우려되는 상황이 빚어졌습니다. 젊을 때, 호기심에, 재미에, 한번 즐겨보자는 심리 때문에 클럽에 갈 수도 있지만, 선을 지키지 않은 몇 명 젊은이들로 인해서 공동체 전체를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주점에 갔던 젊은이들도 그렇구요.
n번방... 참 별 방이 다 있습니다. 저희 세대는 방하면 안방하고 다방 밖에 모르는데... 요즘은 별 별 방이 다 생깁니다. 한국사람들이 노래방 좋아한다고하는데, 저는 일생에 노래방, 딱 1번 가봤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노래방 가서 노래 부르면 재미있다고 하는데, 저는 도무지 재미가 없습니다. 이번에 만천하에 드러난, n번방! 성착취 대화방의 시초라고 하는데, 최초 운영자부터 시작해서 유포한 청년들이 줄줄이 잡히고 있습니다. 박사, 갓갓... 무슨 생각으로 그런 방을 만들었는지... 참으로 끔찍한 성범죄입니다. 또 이번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가는 바람에 알려지게 된 논현동, 무슨 수면방(잠자는 곳?)... 이런 방들은 하나같이 다 정상적으로 지켜야할 윤리, 특히 성의 질서, 그 선을 넘어섰기 때문에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게 되고만 겁니다. 우리 교회 청년들은 그런 방, 절대로 안 가겠지요?...
오늘 말씀의 제목은 [선을 지키는 청년]입니다. 청년만이 아니라 장년, 그리스도인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든지 선을 지켜야 하는데, 우리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선은 말씀의 선입니다. 말씀...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하시는 명령, 계명, 그 어떤 말씀이든지 그리스도인은 그 말씀의 선을 지켜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말씀의 선을 지킨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씀의 선을 지키기 어려운데, 철저히 말씀의 선을 지킨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단 3장에 나오는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당시 상황을 감안해보면, 말씀의 선을 지키기 어려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사각오로 지킵니다.
단 3장, 오늘 본문 앞 부분에 보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거대한 금신상을 만들어서, 바벨론제국 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 금신상에 절하도록 명령했을 때의 일입니다. 악기소리가 들리면 절하라... 만약 절하지 않으면, 화형, 곧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는다고 했습니다. 당시 바벨론에는 유다에서 끌려간 자손들 중에서 다니엘(벨드사살), 그리고 하나냐(사드락), 미사엘(메삭), 아사랴(아벳느고)가 있었습니다. 이 4명은 비록 유다 자손들이었지만, 이방나라 왕의 신임을 받아서 왕의 시중을 들게 되었고, 후에 다니엘이 왕의 꿈을 해석해주어서 높은 자리에 앉게 되었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바벨론 지방 지도자들이 되었습니다. 다니엘이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모두 왕의 절대신임을 받는 사람들이니까, 마땅히 왕의 명령에 대해서는 반드시 따라야만 했습니다. 이제 금신상에 절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으니, 마땅히 절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큰 일을 냈습니다. 악기 소리가 들릴 때, 왕명대로 금신상에 절해야 하는데, 그만 절하지 않은 겁니다. 절하지 않는 장면을 마침 어떤 갈대아 사람들이 보고 있었던 겁니다. 아마도 평소에 유다 사람들을 시기하던 사람들이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절호의 찬스를 포착한 것 같습니다. <이 때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왕에게 나아가서 참소를 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금신상에 절하지 않는다... 여기에다가 거짓으로 지어서 모함까지 했습니다. 12절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지방을 다스리게 하신 자이거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왕을 높이지 아니한 건 아닌데... 왕으로 하여금 더 화나게 할려고 고자질 겸 모함까지 했습니다.
결국 느부갓네살 왕은 크게 노해서 세 사람을 끌고 오라고 해서, 처음에는 사실 확인을 하면서 회유하려고 했습니다. 15절에 증거된 것처럼,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악기 소리가 들리면 금신상에 절해라, 그러면 살려줄 수 있다... 그러나 절하지 않으면, 법대로,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세 사람이 왕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이제라도 절하겠습니다> 한 마디만 하면 화형을 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 사람은 왕의 회유를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16절에 증거된 것처럼,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믿고 있는 신, 여호와, 하나님을 증거합니다. 17절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 금신상이 아니라, 여호와, 전능하신 하나님! 그 분이 자신들을 풀무불에서 능히 건져내신다고 했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신다고 했습니다. 세 사람은 진실로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분명했습니다. 상황이 달라져도 그 믿음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18절에서 한 고백입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곧 하나님이 자신들을 풀무불에서 건져주시지 않아서 거기서 죽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래도 우리는 왕의 신들을 섬기기 않겠다,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겠다... 어쩌면 조금 있으면 불에 타서 죽을지도 모르는데, 죽음이 두려웠을텐데, 어떻게 해서 세 사람은 엄포하는 왕 앞에서, 풀무불 앞에서 이렇게까지 단호한 입장을 보일 수 있었을까요?...
세 사람이 죽음보다, 풀무풀에서 타죽는 것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우상...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세 사람은 생사가 왔다갔다는 순간, 달콤한 유혹의 순간...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의 선을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자기들 목숨 살리자고해서 그 선을 넘어가지는 않겠다는 것입니다. 왕 앞에서 단호히 선언한 세 사람의 고백을 한 마디로 하면 이것입니다. <우리는 죽어도 좋으니, 말씀의 선은 지키겠다!>... 말씀의 선을 끝까지 지킨 세 사람!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죽었습니까? 살았습니까?... 느부갓네살 왕이 더욱 더 진노해서 풀무불을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해서 그 세 사람을 던지도록 했는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지요?... 그 세 사람이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것은 물론이요, 거기에다가 한 사람이 더 있어서 총 네 사람이 풀무불 가운데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세 사람을 그 풀무불에서 나오게 했을 때, 머리털도 그을리지 않았고, 불 탄 냄새도 없었고... 결국 느부갓네살 왕은 또 다시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청년 여러분! 언제 어디서나, 특별히 유혹의 순간, 위기의 순간이 닥친다고 할지라도 정신차리고 선을 지키면, 하나님이 이렇게 기적같이 함께 해주시고,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끝까지 일사각오의 자세로 말씀의 선을 지키면, 말씀이 하라고 한 것은 반드시 하고, 하지 말라고 한 것은 하지 말고... 그 선을 확실하게 지키면, 하나님은 오늘 나에게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반전의 역사를 이루어주십니다.
시편에 보면, 그 누구보다도 말씀의 선을 확실하게 지켜서 말씀의 복을 누린 사람이 있습니다. 시 119편 기자... 시 119편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시 119편이 176절까지 있는데, 시편 기자는 구구절절 자신이 말씀의 선을 지켰다고 증거하는데, 오늘 본문은 청년과 관련된 구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년 시절은 그 어느 시기보다도 유혹도 많고 시험도 많고 불확실성의 시기인데,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로서 깨끗하게 사는 길이 이것이랍니다. 말씀을 철저히 지키는 것... 한 구절씩 차례대로 묵상해봅시다.
9절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말씀만 지키는 것이 청년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10절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시편 기자는 자신이 주의 계명, 곧 말씀에서 떠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11절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범죄하지 않으려고 말씀을 자신의 마음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12절 <찬송을 받으실 주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율례들, 곧 말씀을 자신에게 가르쳐달라고 합니다.
13절 <주의 입의 모든 규례들을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으며> 모든 규례들, 곧 말씀을 자신의 입술로 선포했다고 합니다.
14절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재물을 즐거워하는 것처럼, 주의 증거들의 도, 곧 말씀을 즐거워했다고 합니다.
15절 <내가 주의 법도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길들에 주의하며> 주의 법도들, 곧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린다고 했습니다. 주의 길들, 곧 말씀에 주의한다고 했습니다.
16절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주의 율례들, 곧 말씀을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구절들로 미루어보면, 시편 기자는 말씀의 선을 확실히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삶의 초점, 삶의 우선순위, 삶의 시선이 항상 말씀에 가 있었고,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을 기억하고 말씀이 하라는대로만 했기 때문에, 말씀대로 복을 누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시 119:1-3에서 말씀의 사람이 됨으로 인해서 누리게 된 복을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 참으로 그들은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청년 여러분!... 여러분은 시 119편 기자처럼 지금 말씀의 선을 철저히 지키고 계십니까 아니면 선을 넘으셨습니까?... 말씀의 선을 넘으신 분?... 말씀의 선을 넘으셨으면 이 자리에 안계시겠지요?... 우리는 한 순간도 방심해서는 안됩니다. 나도 모르는 순간, 무의식 중에 말씀의 선을 넘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첫 번째 사람, 아담과 하와를 보시기 바랍니다. 한 순간에 말씀의 선을 넘어서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도 그랬고, 다윗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계보에 당당히 선조가 된 다윗, 다윗도 성군이라 불리웠지만, 한 순간에 말씀의 선을 넘어서 간음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제자 중 제자, 베드로도 어느 순간 말씀의 선을 넘어서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말씀의 선을 지키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하지만, 나로 하여금 순간순간 그 선을 넘어가게 하는 자가 있습니다. 누군지 다 아시지요?... 사단... 사단은 예수님에게도 접근해서 말씀의 선을 넘도록 유혹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사단의 유혹을 물리치고 말씀의 선을 끝까지 지킴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시 119편 기자처럼, 더 나아가 예수님처럼 할 수 있을까요?... 다른 왕도가 없습니다. 오직 말씀만을 가장 즐거워하면서 말씀묵상에 전념하면 됩니다. 시 1:1-2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의 율법, 곧 말씀을 주야로 묵상... 물론 묵상이 묵상으로만 끝나서는 안되고, 일상의 삶 속에서 말씀이 하라는 것은 하고, 말씀이 하지말라는 것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묵상에 합당한 행동, 실천...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걸고 말씀의 선을 지켜야 합니다.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처럼, 독일의 목사, 신학자, 반나치운동가 본회퍼처럼...
오늘날 전 인류를 두 부류로 구분하면,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또한 그리스도인을 두 부류로 구분하면, 말씀의 선을 지키는 그리스도인과 선을 넘는 그리스도인... 오늘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그 어떤 경우에도 말씀의 선을 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47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본회퍼는 39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나를 몇 세에 부르실지 모르는데,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그 날까지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말씀의 선은 절대로 넘지 마시고, 말씀의 선 철저히 지키셔서 하나님만을 영화롭게 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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