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지사항이 없습니다.
에덴하우스입니까
2020.5.3. 주일예배(어린이주일). 김충현 목사
창 2:7-8, 18-25, 마 18:1-4 [에덴하우스입니까?]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우리 교우님들의 가정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고, 우리 교우님들의 집이 모두 다 천국 행복이 가득한 집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질문을 한 가지 하고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가정, 제일 먼저 지어진 집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에덴하우스... 이름 참 좋지요?... 앞으로 집지을 계획이 있으면, 집이름을 에덴하우스라고 지어보십시오. 에덴하우스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동방에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하나님이 친히 창조하신 사람, 아담을 거기에 살게 하신 집입니다. 창 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아담이 집을 짓고 살았을까요 그냥 살았을까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이 혼자서 살고, 주변에 먹을 것들이 있으니, 굳이 집을 지을 필요가 없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아담에게는 에덴동산 전체가 에덴하우스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에덴하우스에는 아담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담 혼자 지내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좋지 않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을 위해서 돕는 배필(에제르, helper)를 지어주기로 하셨습니다. 창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아담에게 가족을 만들어주시기로 하신 겁니다. 가족은 어떻게 만드셨는가 하면, 21절 이후에 증거된대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셔서(인류 최초의 마취),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셔서 살로 대신 채우시면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22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의 갈빗대로 만들어진 여자!... 하나님은 그 여자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셨습니다. 세계 최초의 결혼식이 성사되었습니다. 아담은 자신을 위해서 만들어진 여자를 보고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23절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창세기 기자는 에덴하우스에서 가장 먼저 살게 된 가정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24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남자, 여자 두 사람이 한 몸, 곧 한 가정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창설하신 에덴하우스!... 그리고 하나님이 손수 만드신 두 사람, 남자와 여자, 곧 아담과 하와!...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남녀, 완벽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 완벽한 남녀가 사는 에덴하우스 또한 하나님이 건축하신 완전한 곳이니, 두말할 것 없이 에덴하우스는 행복한 집이어야 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집들보다도 행복이 넘쳐나는 가정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런 목적으로 만드셨으니,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에덴하우스, 행복했습니까?...
에덴하우스의 행복은 창 2장, 한 장으로 끝났습니다. 창 3장 이후로 에덴하우스의 행복은 깨졌습니다. 세상 그 어떤 부부보다 가장 행복했어야만 하는 부부, 최초의 부부는 하나님의 금지명령을 어기고, 서로 탓하는 바람에 결국 에덴동산으로부터 추방되었습니다. 에덴하우스 영주권을 박탈당하고 말았습니다. 이후로 인류는 에덴동산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만약 오늘날까지 에덴하우스가 남아 있었더라면, 그 집터라도 일부 흔적이 남아 있었더라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한번 깊이 생각해봅시다. 왜 아담과 하와는 에덴하우스에 살게 되었으면서도, 에덴하우스에서 사는 행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을까?... 에덴하우스야말로 천국과 같은 곳인데, 그런 곳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 곳에 사는 행복을 가지지 못했을까?... 단지 뱀의 유혹에 넘어가서 범죄해서일까?...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하우스에 살만한 마음의 자세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에덴하우스에 살려면, 그 무엇보다도 에덴하우스를 만드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하신 명령을 잊지 말고 그 명령에 절대순종했어야 하는데, 절대순종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겸허히 순종하는 마음, 순수하게 순종하는 마음... 그 마음이 실종되면서 에덴하우스에 사는 행복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아담과 하와였다면, 에덴하우스에서 계속 사실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에덴하우스보다 더 좋은 곳이 주어졌습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천국... 오늘의 에덴하우스는 천국입니다. 진실로 예수님을 믿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천국을 선물로 주시고, 거기서 살게 하셨는데, 여러분은 지금 천국에서 잘 살고 계십니까?... 혹시 아담과 하와처럼 천국의 행복을 풍성히 누리고 살아야 하는데, 그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혹시 이런저런 범죄로 인해서 시험에 들어서 천국에서 추방된 것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오늘의 에덴하우스, 곧 천국에서 천국의 행복을 온전히, 풍성히 누리면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답을 오늘 본문, 마 18장에서 찾아봅시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서 제자들과 함께 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제자공동체 안에서 서로 열띤 토론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제자가 총 12명인데, 그 12명 사이에서도 서로 <누가 크냐>... 토론이 있었습니다. 자기들 12명 중에서 누가 가장 잘났을까... 어느 제자를 예수님이 가장 이뻐하실까... 하늘에서는 누가 가장 인정받는 제자일까... 아주 궁금했나 봅니다. 한참 이야기하다가 결론이 나지 않았는지, 마침내 제자들은 예수님께로 와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표준새번역개정판에서는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이 질문의 배후에는 은근히 자기가 가장 큰 제자일 것이라는 기대가 담겨져 있기도 하고, 더 나아가 가장 큰 사람이 되어야만이 가장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질문을 받으시고,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아무래도 늘 앞장서는 베드로가 아니겠느냐>... <야고보도 큰 사람이지>... <아니야 사랑이 많은 요한일까>... 그동안 자신이 신뢰해온 제자들을 거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아직까지도 천국의 행복을 제대로 누리고 있지 못함을 안타까와 하시면서, 당시 제자들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답을 하셨습니다. 먼저는 한 어린 아이를 불러서 제자들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의 시선을 오직 어린 아이에게로만 집중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4절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음미해봅시다. 먼저 이 말씀,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 조건! 무엇이랍니까?...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어야 한답니다. 지금 제자들은 어린 아이들과 같습니까?.. 전혀 어린 아이들과 같지 않습니다. 서로 누가 크냐, 누가 잘났냐... 은근히 비교하고 재기만 하고 있으니, 도무지 제자로서의 순수함이 없습니다.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못된 어른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겁니다. <너희는 지금 그 상태로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 다음,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제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 천국에서 큰 자... 누구랍니까?... 자기를 낮추는 사람...어린 아이라고해서 다 자기를 낮추는 것은 아니지만, 어린 아이의 참 속성 중 하나는 자기를 높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크다, 잘났다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기를 낮출 줄 아는 사람, 자진해서 낮아지고 말이나 행동이 겸손한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천국에서 큰 자... 천국의 행복을 가장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에덴하우스에서 살 자격이 있는 사람, 에덴하우스에서 쫓겨나지 않고 천국의 복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을 나 자신에게 적용해봅시다. 아담과 하와에게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에덴하우스를 세워주셨습니다.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삶의 현장에서 우리는 마땅히 에덴하우스에서 사는 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집에 살게 되었으니, 마땅히 행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만약 조금이라도 행복하지 못하다면, 문제는 공동체 있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면, 교회에서는 아무개 교인 때문도 아니고, 집에서는 남편 때문도 아니고 아내 때문도 아니고, 부모님 때문도 아니고, 자녀들 때문도 아닙니다. 우린 무슨 문제가 터지면 꼭 공동체 탓하고, 남 탓하는 습관이 있는데, 근본적인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오늘 내가 에덴하우스에 살게 되었으면서도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하십니까?... 교회에 있으면서도, 좋은 집에 살고 있으면서도 천국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 그 이유는 나 자신에게 있다... 내가 나를 낮추지 않았기 때문이랍니다. 어린 아이는 결코 자기를 높이지 않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주거나 치켜세워주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인정! 그런거 바라지 않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그런 것들을 기대하거나 바란다면 이미 어린 아이가 아닙니다.
여러분, 내가 점점 변해간다는 거... 인지하고 계십니까?... 나도 모르는 순간에, 무의식중에 점점 변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변해버린 줄 모릅니다. 그리스도인들 경우도 예외는 아닙니다. 스스로 자신은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 많이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느 순간 자기를 높이려고 하고, 어느 순간 자기가 제일 잘 났다고 은근히 과시하려고 하고, 어느 순간 교만해져서 남을 가르칠려고 들고, 어느 순간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인정받으려고 하고 대접받으려고 하고, 어느 순간 목에 힘이 들어가서 자신이 뭐나 된 것처럼 남들에게 보여지기를 바라고, 어느 순간 자기가 모든 것을 주도하려고 하고... 이렇게 변해버리는 것은 스스로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렇게 변해버린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은 얼마나 안타까우셨겠습니까?... 에덴하우스, 천국의 행복을 누려야할 사람들이 저러고 있으니... 제자들 앞에 어린 아이를 내세워야만 하는 예수님의 심정이,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제자들처럼 이런 식으로 변해버리지 않토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어린 아이들을 세워두십니다. 우리 서울중앙교회 교우님들, 어른들 앞에도 어린 아이들을 세워두십니다. 우리 교회에도 어린 아이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을 우리 앞에 세워두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서울중앙교회 교우들에게 이르노니 서울중앙교회 교우들이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자기를 낮추라... 자기를 낮추라... 자기를 낮추라...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뼈저리게 나 자신의 교만해져가고 있음을 깨닫고, 나를 더 낮추어야 합니다. 이전보다 더 겸손해지고, 또 겸손해져야 합니다. 남들이 나를 볼 때,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나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볼 때, 어린 아이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한없이 겸손하신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 나도 저 사람처럼 겸손해져야겠구나! 나도 저 분처럼 순수해져서 더 낮아져야 하겠구나!>...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어린이는 우리 가정에 주신 하나님의 선물, 선물 중에 선물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대할 때 자기 뜻대로, 자기 감정대로가 아니라,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되, 동시에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어린이 안에 에덴하우스, 천국의 행복의 비밀이 있다는 사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를 볼 때마다 스스로 각성해야 합니다. 나 자신을 향해서 이렇게 겸허히 고백하면서, 어린이와 같이 되기를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실천하고 또 실천해야 합니다.
<아무개야! 너를 낮추어라! 지금보다 더 더 낮추어라!>...
<아무개야! 겸손해라! 지금보다 더 더 겸손해라!>...
번호 | 제목 | 글쓴이 | 조회 | 날짜 |
---|---|---|---|---|
805 | [2020 여름 시편묵상3] 나의 맡김 size는? K. B. M. S. | 샬롬김 | 1737 | 2020.07.26 12:08 |
804 | [2020 여름 시편묵상2] 하늘 고충처리위원장 | 샬롬김 | 1841 | 2020.07.19 11:57 |
803 | [2020 여름 시편묵상1] 하나님이 찾으시는 이상형 | 샬롬김 | 2298 | 2020.07.12 12:05 |
802 | 행복으로 직행하는 지름길 [1+1] | 샬롬김 | 2188 | 2020.07.05 12:15 |
801 | 한반도 주권은 하나님 손에 | 샬롬김 | 2634 | 2020.06.28 12:13 |
800 | 9회말 2out인생이어도 | 샬롬김 | 1959 | 2020.06.21 12:28 |
799 | 교회 다니십니까? | 샬롬김 | 1611 | 2020.06.14 12:06 |
798 | 코로나 블루 백신 corona blue vaccine | 샬롬김 | 2040 | 2020.06.07 12:09 |
797 | 포스트코로나(Post COVID-19)시대와 전도 | 샬롬김 | 2370 | 2020.05.31 12:12 |
796 | [예.살.3] 온유한가 | 샬롬김 | 1738 | 2020.05.24 19:56 |
795 | 5월 17일 최정민 목사 설교 | 샬롬김 | 2139 | 2020.05.22 12:40 |
794 | 선을 지키는 청년 | 샬롬김 | 1535 | 2020.05.17 09:15 |
793 | 부모사랑은 무조건! | 샬롬김 | 1656 | 2020.05.11 04:16 |
>> | 에덴하우스입니까 | 샬롬김 | 1946 | 2020.05.03 12:15 |
791 | 죄와의 영적 거리두기 | 샬롬김 | 1730 | 2020.04.27 04:13 |
790 | 위기시대의 최후승리자 | 샬롬김 | 1533 | 2020.04.19 05:33 |
789 | 예수 부활의 이유 | 샬롬김 | 1794 | 2020.04.12 06:05 |
788 | 기도 중인가? 잠자는 중인가? | 샬롬김 | 1743 | 2020.04.05 05:25 |
787 | 한국교회는 대한민국의 희망인가 | 샬롬김 | 1706 | 2020.03.29 05:49 |
786 | 종말론적 교회와 신앙 | 샬롬김 | 1578 | 2020.03.22 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