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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의 영적 거리두기
2020.4.26. 주일예배. 김충현 목사
롬 6:1-11, 요일 5:18 [죄와의 영적 거리두기]
지난 2월 23일 주일예배 이후, 흩어져서 온라인예배로 드리다가, 지난주간, 월요일, 새벽기도회를 시작으로, 오늘, 두 달 만에 주일예배를 드리게 됨을,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아직까지는 코로나19가 진정되지 않은 상태이고, 방역당국에서도 5월 5일까지, 완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연장된 상태입니다. 감염병의 미래가 아직도 불확실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종교시설에 대해서는 계속 온라인예배로 협력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다만 현장예배를 하는 경우, 감염병 8대 예방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벌금이 부과되고, 집회 제한을 받게 됩니다. 만약 감염 확진자가 나오면 그에 관한 모든 비용을 교회가 부담해야 합니다. 앞으로 계속 해서 방역당국의 지침에 적극 협조하면서, 예방수칙 또한 철저하게 지켜서, 우리 교회, 더 나아가 한국교회, 끝까지 이상무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먼저는 대한민국에서 거두어가시고... 저는 매일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대한민국, 한국교회를 통해서 영광받으시도록 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대한민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거두어주시기를... 그리고 세계 지구촌 곳곳에서 하나님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완전히 거두어가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깨달은 것 중 하나가 일상의 소중함입니다. 마스크 쓰지 않고도 마음껏 숨쉬고 걸어다니는 것... 사람들이 만나서 함께 대화하며 식사할 수 있는 것... 여기저기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것...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직장에 나가서 일하는 것... 이런 모든 일들, 이전에는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지난 몇 개월 겪어보니까 그 평범한 일상들이 참으로 소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 경우에는, 교회에 모여서 예배하는 일의 소중함입니다. 이전에는 교회에 모여서 예배하고 기도회하는 일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는데, 그래서 습관적이 되고 어떤 때는 자주 빠지기도 하고 소홀히 하기도 하고 게을렀던 적도 있었는데, 몇 달 간, 그 일을 하지 못하니까, 교회에 모여서 예배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셨는데, 그 깨달음이 단지 한 때의 각성으로만 끝나지 말고, 더 이상 후회와 탄식만 하지말고, 깨달은대로 실천해서 앞으로는 더욱 더 성숙한 신앙생활, 더욱 더 부지런한 교회생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두 달 동안, 저나 여러분이나 가장 많이 들었던 말 하나가 있습니다. 코로나19,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단어와 더불어서 귀가 닳토록 들었던 말, 지금도 여전히 듣고있는 말... 방송에서나, 전철에서나, 어디에서나 들려오는 말... 사회적 거리두기 social distance(미국 사회학자 E. S. Bogardus)... 이 말의 사회학적인 의미는 사회 안의 집단 구성원이나 집단 간에 존재하는 규범적, 정서적, 문화적 거리를 의미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집단 구성원 사이의 물리적 거리로 그 의미가 한정됩니다. 감염병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 사람 사이의 접촉을 줄이는 것... 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physical distancing 물리적 거리 두기라고도 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기 위해서, 우리나라는 물론이요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접촉할 수 있는, 모든 물리적 기회를 최대한 줄였습니다. 이전에는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였는데, 지금은 정반대가 되었지요.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처럼 여기는 교회예배도 교회에 모이지 않고, 흩어져서 집에서 온라인예배로 각각 드리고...
인간관계라는 것이 밀접 접촉하고 친밀하게, 가깝게 지내는 것이 기본인데, 이렇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자니, 많은 사람들, 많은 단체들과 기업들이 불편해하고 힘들어했습니다. 지금도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에 이렇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한 가지 영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감염병 예방을 위해서 하는 사회적 거리두기와는 별도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정신차리고 거리두기를 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감염병 걸리지 않고 살기 위해서 거리두기를 하는 것인데, 우리의 몸만이 아니라 영이 살기 위해서 반드시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죄와의 거리두기입니다. 이번에 저는 이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내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서는 이렇게 신경 많이 쓰면서, 정작 죄와의 영적 거리두기는 얼마나 신경을 쓰고 제대로 하고 있는가? 죄와의 거리두기는 너무 무심한 것 아닌가?>...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죄와의 영적 거리두기! 잘하고 계십니까?... 혹시 교회 안에서는 죄와의 거리두기를 어느 정도하는데, 교회 밖에서, 삶의 현장에서는 무관심하거나 무시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만약 죄와의 거리두기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죄를 가까이 하게 되면 감염병에 감염되는 것보다 더 불행하고 더 비참한 결과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본래 그리스도인은 그 누구보다도 죄와의 거리두기를 철저히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해서 이미 죽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해서 죽은 사람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신약성경, 로마서에서 분명히 증거합니다. 로마서 중에서도 특히 롬 6장, 오늘 본문에서 분명히 증거해줍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이신칭의에 대한 말씀을 하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은 상태가 어떤 것인지, 그 확실한 근거를 오늘 본문에서 말씀합니다.
롬 6장, 1절 이후에 보면,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바울이 반문을 합니다. 오늘 본문에 앞서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진실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해서 죽은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2절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이미 죄에 대해서 죽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3절에서도 강조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사람인데, 이는 예수님처럼 죄에 대해서는 장사지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인이 맞다면, 현재 나는 죄에 대해서 죽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죄에 대해서 죽었다면, 죄와의 거리가 분명히 있습니다. 결코 죄를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죄를 가까이 하지 않으니, 또한 죄의 노예가 될 수 없습니다. 죄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습니다. 죄에 대해서 죽은 사람은 이제 새생명 가운데서 행할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4절에 증거된 것처럼,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절에서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예수님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죄에 대해서 죽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직결시킵니다. 6절에 보면,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기에,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는다는 것은 죄로부터 벗어난 상태를 뜻합니다. 7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은 상태... 이것이 진정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참 모습입니다. 죄에서 벗어나 있으니, 더 이상 죄에 끌려다니지 않습니다. 더 이상 범죄할 수 없다. 다른 말로 하면, 죄와의 확실한 거리 두기 상태에 있는 겁니다. 죄가 나에게 근접불가... 나 또한 죄에게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죄와의 밀접접촉이 불가합니다.
바울은 10절에서 다시 한번 예수님의 죽으심을 강조하는데, 예수님의 죽으심은 단순히 목숨이 끊어지는 죽음이 아니라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 예수님이 이렇게 죄에 대해서 단번에, 완전히 죽으셨으니,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심을 받은 나 또한 죄에 대해서 완전히 죽어 있어야 합니다. 완전히 죽어야만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 수 있는 복을 누립니다. 그래서 바울은 선언합니다. 로마교회 교인들에게만 아니라, 오늘 모든 세대에 걸친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선언합니다. 11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 이렇게 선언하는 바울 자신도 스스로를 항상 죽은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인간 나 바울은 죽었다!... 죽었는데, 적당히, 대충 죽은 사람이 아니라, 완전히 죽은 사람... 죽은 사람은 어디에 있습니까?... 무덤... 무덤에 있으니, 죄가 근접할 수가 없습니다. 무덤에 있는 사람이 또한 죄를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나와 죄 사이에 분명히 거리가 있습니다.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 오늘은 이 구절을 깊이 묵상해봅시다. 오늘의 그리스도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심을 받은 나, 김충현은 과연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인가... 성경을 안보는 사람은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성경을 보면, 죄의 종류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과연 나는 그 어떤 죄에 대해서도 완전히 죽은 사람인가, 철저히 죽은 사람인가... 완전히, 철저히 죽은 사람이어만이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 수 있습니다. 새사람으로서 새생명을 온전히 누릴 수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 졸업하는 후배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이 첫 번째 장례식 날입니다> 목사 안수받는 후배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이 두 번째 장례식 날입니다> 왜 그런 말을 하는가 하면, 목회는 죽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죽지 않은채로 목회현장에 나선다면, 그 목회는 반드시 실패합니다. 이런 저런 일로 범죄하고 시험에 들어서, 스스로 불행해집니다. 목회가 천국생활이 아니라 지옥생활입니다. 징역살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첫 번째 장례식만으로는 안됩니다. 두 번째 장례식만으로도 안됩니다. 행복한 사역을 계속 하려면, 날마다 죽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실 때, 사람들이 나를 볼 때 죽은 사람처럼 보여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저를 보실 때, 제가 죽은 사람처럼 보여지십니까?... 아니면 아직도 인간 김충현이 살아 있는 것 같습니까?... 만약 제가 순간 순간 조금이라도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면 저에게 이렇게 외치십시오. <죽어라!>...
저만을 향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을 향해서도 항상 외치시기 바랍니다. <아무개야! 죽어라!>... 뭐를 죽어야 합니까?... 나를 죽여야 하는데, 내가 가까이 하는 바람에 죄에 감염된 나를 죽여야 합니다. 죄는 바이러스보다 더 무섭습니다. 바이러스... 이번에 무서운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는데,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완치자라도 항체 형성을 확신할 수 없어서, 언제라도 재발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죄는 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재발 가능성이 높습니다. 죄야말로 항체 형성이 안됩니다. 아무리 내가 회개하고 죄를 죽였다고 해도 언제 어떤 양상으로 또 다시 재발해서, 나로 하여금 범죄하게 만들고 시험에 들게 합니다. 분명히 회개하고 죽였다고 했는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죄를 가까이해서 내 안에, 내 삶에 죄가 꿈틀거립니다. 그래서 그 죄로 인해서 하루 아침에 비참한 인생으로 전락하게 만듭니다. 오늘날에도 보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높은 자리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예기치 않았던 일들로 인해서 죄가 재발하는 바람에 한순간에 범죄하고 불행한 인생으로 전락하는 사례들을 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항상 정신을 차리고 죄와의 영적 거리 두기를 의지적으로 해야 합니다. 죄와의 거리 두기는 내 힘, 내 의지만으로는 결코 안됩니다. 1대1로 내가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나로 하여금 죄와의 거리 두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강력한 힘이 있는데, 누군지 다 아시지요?... 성령님... 날마다, 순간마다 성령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성령님을 의지해서 죄와의 거리 두기를 하면, 우리는 얼마든지 죄에 대해서 죽은 사람은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요일 5:18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일서 기자에 의하면, 하나님의 자녀는 죄와의 거리 두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어떻다고 합니까?... 다(누구든지)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범죄하지 아니한다는 것은 죄와의 거리 두기를 실천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죄와의 거리 두기를 철저히 하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지켜주시고, 악한 자가 하나님의 자녀를 만지지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오늘 나는 진정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하나님의 자녀 맞습니까?...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과거에 죄와의 거리 두기를 소홀히 했다면, 이제부터는 더 이상 그러지 맙시다. 오늘 예닮골언어를 <죄와의 거리! 아주 아주 멀리>라고 했는데, 날마다, 순간마다 아주 아주 멀리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죄와의 거리 두기를 철저히 하셨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오직 성령님을 의지해서 죄와의 거리두기 철저히 하셔서, 종말의 때, 영적 전쟁에서 승리, 또 승리하시고, 날마다 새생명 가운데서 기쁘게, 능력있게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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