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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울 때의 친구
2020.3.8. 주일예배(사순절 2). 김충현 목사
막 1:29-34, 요 15:13-14 [어려울 때의 친구]
이번 주일도 온라인예배로 드리게 되었습니다. 지난 주일, 어느 교우님이 전화로 이런 인사를 하셨습니다. <한 주일을 못보니 한 달을 못보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보고 싶다는 뜻이겠지요. 오늘도 직접 대면할 수는 없지만, 여러분이 계신 그 자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 일대일로 예배하는 자리가 되셔서 교회, 예배실에서 예배하는 것 이상의 은혜가 넘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배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또 다른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가 여러분의 가정, 집, 기업, 예배하는 처소마다 분명히 있게 될 줄 믿습니다.
다음 주일에는 다시 뵙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주 들었던 소식들이 있습니다. 감염병 확진자 숫자가 증가했다든지, 신천지로 인해서 사태가 더 악화되었다든지, 마스크가 부족해서 약국마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든지, 감염 예방을 위해서 사회적 거리(약 2m)를 두어야 한다든지... 그런데 이런 소식들과 더불어서, 우리를 실망하게 하고 분노하게 만들었던 소식이 있지요. 한국 국민들의 입국을 일방적으로 금지하거나 강제적 격리 조치하는 나라들이 갑자기 급증하고, 아시아계 국민들, 한국 국민들을 의심하고 혐오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단지 우리나라에서 감염병 확진자들이 늘어난다는 통계만 보고, 사전 조율이나 협의도 없이 아예 문을 걸어닫고, <우리나라에 오지 마!>...일부 나라, 일부 국민들은 우리를 무슨 원수처럼, 적처럼 대하려고 합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런 저런 일로 높아지는 대한민국의 위상, 한류 열풍으로 인해서 친구처럼 대하고, <우리 친구!>, <한국 최고!>라고 하면서 가까이 할려고 했던 나라들인데, 이번 일로 인해서 한 순간에 등을 돌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차갑게, 냉랭하게 대하고 있습니다. 마치 관계 단절할 것처럼... 물론 그렇게 대하는 나라들의 심정도 이해가 되지만, 통상의 외교적 절차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행동하는 모습들에 대해서 우리나라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지구촌 한 가족이란 말이 무색합니다. 이제 세계 지구촌은 글로벌공동체, 공동운명체인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 19에는 친구도 없구나... 다들 이런 생각만 하는 것 같습니다. <나만이라도 살아야지>, <내 가족만이라도 살아야지>, <내 나라만이라도 살아야지>... 모든 상황이 좋을 때는 서로, 자기가 먼저 친구하자고 적극 달려들지만, 상황이 갑자기 어려워지고 자신에게 불리해진다싶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리하고 적대하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예수님이 생각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어려운 일이 발생할 때, 어떤 일의 사태가 악화될 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복음서 속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는데, 오늘 본문, 막 1장 말씀에도 보면 예수님이 어떻게 하시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때가 되어서 성육신하신 예수님!...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수님이 사람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오실 때는 세상은 온갖 죄악으로 가득했습니다. 각종 질병과 죄의 바이러스로 오염된 세상이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 19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전염력을 가진 죄들로 감염된 사람들이 있는 세상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세상에 예수님이 오신 겁니다. 인간적으로만 생각하면,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고 싶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 누가 오염된 곳으로 자원해서 갈려고 하겠습니까?... 방사능 오염된 곳, 전염병 오염된 곳... 사람들은 그런 곳으로 안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곳들보다 더 위험한 곳, 곧 각종 죄악으로 오염된 이 세상에 오신 겁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런 세상에 오셔서 죄인들과 거리를 두고 만나신 것이 아니라, 각종 죄와 질병으로 감염된 사람들을 직접 만나주셨습니다. 그것도 일대일로 직접 대면하면서 만나주셨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적으로 대하셨습니다. 거리를 두지 않으면 위험해질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밀하게 다가오셨습니다. 막 1장,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회당에서 나와서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의 일입니다. 마침 그 집에는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열병... 여기서의 열병은 단순히 열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큰 열병, 중한 열병(눅 4:38)이었습니다. 어느 신학자에 의하면, 말라리아 같은 급성 열성 전염병으로 추정합니다. 오늘날,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치명적인 감염병일 수도 있습니다. 당시 의료진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던 상황에서는 치료도 못하고 그냥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사람들도 그 여자를 가까이 하지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때였는데, 예수님은 사람들의 요청을 받고 시몬의 장모에게 가까이 가셨습니다.
그 다음,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는지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31절 함께 읽겠습니다.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예수님은 열병에 걸린 여자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습니다. 예수님 정도면 그냥 손잡지 않고 그냥 말씀으로 고치실 수도 있었을텐데... 전염의 위험성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몬의 장모의 손을 잡으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열병이 떠나갔습니다. 열병의 열은 어느 정도 치료 기간이 있어야 하고, 치료약이 말을 들어야 하는데, 이 여자는 예수님이 손을 잡아주시는 순간, 열이 떠나간 것입니다. 이 여자의 열병이 확실히 낫게 되었다는 증거는, 여자가 예수님과 그 무리에게 수종들게 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열병까지도 고치시니까, 소문은 가버나움 동네에 급속도록 퍼졌습니다. 오늘날의 SNS만큼 순식간에 퍼졌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 주변으로 몰려들게 되었습니다. 32절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모든 병자, 귀신 들린 자... 이 병자들 중에는 각종 질병을 앓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무서운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같으면, 전염병 걸린 사람들은 엄격하게 격리시켜놓아야 하는데... 그런 건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이렇게 대책없이 병자들이 많이 몰려들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도 감당이 안되어서 몇 명만 고쳐주시고 그냥 돌려보내실 수도 있었는데,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에게로 모인 병자들은 다 고쳐주셨습니다. 34절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예수님은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모든 병자들을 다 고쳐주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이렇게 병자들을 고쳐주신 이유는 자신의 치유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도 아니요,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자신의 세력을 끌어모으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이유는 한 가지...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나라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요, 더 나아가 이런 기적같은 일들을 통해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직접 경험하고 예수믿고 구원받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렇고, 복음서 곳곳에서 예수님이 죄인들, 각종 병자들에게 친히 다가가시고 그 어떤 질병이라도 사랑으로 고쳐주시는 것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진짜 친구이구나>... <말로만 만 친구가 되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삶으로 친구가 되어주는 분이구나>... 마 11:19에 의하면,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 불리웠습니다. 모든 병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당시 그 누구도 만지거나 접촉하기 싫어했던 나병환자들의 친구도 되어주셨습니다. 당시 나병은 감염성 질환이었는데, 예수님은 그런 병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이런거 보면, 예수님이야말로 진정한 친구이십니다. 어느 고전에 보면, 급난지붕(急難之朋)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주식형제(酒食兄弟)는 천개유(千個有)로되 급난지붕(急難之朋)은 일개무(一個無)니라> 술 친구는 천 사람도 있지만, 위급하고 어려울 때의 친구는 한 사람도 없다는 뜻입니다. 급난지붕... 급하고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는 친구... 예수님이야말로 급난지붕입니다. 좋을 때만 친구가 되어주신 것이 아니라, 어려울 때도 친구가 되어주시는 분입니다. 특히 아무도 친구가 되어주지 않은 죄인들, 병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시는 분입니다.
급난지붕이신 예수님!... 그 예수님이 오늘 우리의 친구가 되어주신답니다. 죄인인 우리는 감히 예수님의 친구가 될 자격이 없지만, 오늘 우리에게 친구처럼 다가오십니다. 예수믿고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친구가 되어주십니다. 친구가 되어주시는데, 보통 친구가 아니라, 급난지붕이 되어주십니다. 좋을 때만, 건강할 때만 친구가 되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어려울 때도, 병들었을 때에도 친구가 되어주십니다. 세상 친구들은 다 나를 버려도, 예수님은 절대로 나를 안버리십니다. 끝까지 친구가 되어주셔서 기적같은 일도 일어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를 경험하게 해주십니다.
지금 감염병으로 인해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우리 대한민국 백성들!... 예수님은 결코 지나치거나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냥 방관만 하지 않으십니다. 시몬의 장모에게 찾아오셔서 그 병든 손을 잡아서 일으키신 예수님! 각종 병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신 예수님!... 그 예수님이 오늘 우리 대한민국 땅에 친히 오셔서 질병으로 고통받는 우리 백성들의 친구가 되어주십니다. 심히 위중한 가운데 있는 병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십니다. 우리 모두를 고쳐주시고, 다시금 회복시켜주셔서 이땅에 다시금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이런 예수님을 우리가 믿고 있다면,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먼저 믿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한국교회 교인들이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서, 오늘 우리 대한민국 정황을 바라보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어려움에 빠진 우리 이웃, 우리 동족의 친구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할 수는 없을지라도 어떤 형태로든지 급난지붕, 어려울 때의 친구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우리가 진실로 예수님의 참 제자요, 예수님의 참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요 15장,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 15장에서 예수님은 포도나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로서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강조하셨습니다. 13절에 보면,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친구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랑은 최고의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14절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친구인지, 명시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사랑의 계명을 지키면, 나의 친구, 예수님의 친구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닮골 교우 여러분, 저와 여러분... 예수님의 친구 맞습니까?... 진실로 맞다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우리 이웃을 돌아보면서, 어려울 때의 친구가 되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을 놓고 적용해본다면, 현재 감염병으로 인해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또한 감염병 치유를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어떤 형태로든지 사랑의 나눔을 실천해야 합니다. 대구, 경북 지역 의료진들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자원해서 나서는 의사들, 간호사들... 올해 간호장교 임관하자마자 자원해서 나서는 젊은이들... 물질적으로나마 작은 도움을 주고자 이런 저런 모양으로 기부하는 분들... 참으로 귀한 분들입니다. 이렇게 어려울 때 친구처럼 함께 해주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희망이 있는 것인데,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우리가 예수님의 친구다운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친구가 참다운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것은 진지한 원조와 막대한 희생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가장 좋다. 그 다음으로는 방금 당한 불행을 벗에게 알리는 순간이다.> 방금 당한 불행을 벗에게 알렸을 때... <나 지금 이런 불행을 당했어>, <나 굉장히 어려워>, 이런 소식을 친구에게 알렸을 때, 어느 친구는 이렇게 나올 껍니다. <어, 그래. 이제 전화하지 말자. 나 아는체 하지 마.>... 문닫아두는 친구... 이런 사람은 진정한 친구가 아니지요. 반면에 이런 친구도 있을 껍니다. <얼마나 힘들겠어. 나한테 계속 연락해.>, <뭘 도와줄까? 힘내!>... 문열어두고, 친히 다가와서 도와주는 친구... 이런 사람이 진정한 친구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이런 친구가 되어주신 겁니다.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구원의 은혜를 받고 영원히 살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사순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신 일이야말로 친구되어주심의 참 징표입니다. 친구란 바로 이런 것이다... <나는 너의 친구다!> 자신의 생명을 다 내어놓기까지 몸으로, 삶으로 보여주신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범사에 나의 친구가 되어주시지만, 특별히 어려울 때, 더욱 더 친구가 되어주고자 하십니다.
많은 찬송가 작사자들이 어려울 때 친구되어주시는 예수님을 찬양했습니다.
83장 작사자, J. B. Mackay: 1절 <나의 맘에 근심구름 가득하게 덮이고 슬픈 눈물 하염없이 흐를 때 / 인자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부르사 나를 위로할 이 누가 있을까 / 주 예수 주 예수 주 예수 밖에 누가 있으랴 / 슬퍼 낙심될 때에 내 친구되시는 구주 예수 밖에 다시 없도다>
86장 작사자, P. P. Bilhorn: 1절 <내가 늘 의지하는 예수 나의 상처입은 심령을 / 불쌍하게 여기사 위로하여 주시니 미쁘신 나의 좋은 친구 / 내가 의지하는 예수 나의 사모하는 친구 / 나의 기도 들으사 응답하여 주시니 미쁘신 나의 좋은 친구>
88장 작사자, C. W. Fry: 1절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구주 예수님은 아름다워라 / 산밑에 백합화요 빛나는 새벽별 주님 형언할 길 아주 없도다 / 내 맘이 아플 적에 큰 위로 되시며 나 외로울 때 좋은 친구라 / 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오늘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때를 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공동체적으로, 교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참으로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도 자원하신 친구, 친구 중의 친구, best friend, 예수님이 내 곁에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 한 주간도 어려울 때에도 변함없이 친구되어주신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저와 여러분도 그 예수님처럼 살아가심으로 그 어떤 어려움도 다 극복하고, 이 땅에 천국이 회복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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